"이제 일반인도 갈 수 있다"
40년 만에 공개된 전국의 1급 보안시설들
용도가 다한 낡은 시설이나 건물을 되살린 '다시 태어난 여행지'가 주목받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도시 재생 여행지는 훼손된 자연과 환경에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하거나 나쁜 영향을 끼친 곳이 친환경 여행지로 거듭난 곳을 뜻하는데요.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도시 재생 여행지가 시간여행을 떠나고픈 기성세대부터 '뉴트로' 감성에 환호하는 MZ세대까지 사로잡으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급 보안시설에서 예술 공간으로, 마포 문화 비축기치
서울 성산동의 마포 문화비축기지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입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산업 시설 석유비축기지를 개조했는데요.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석유탱크 5기가 들어섰고,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을 총 6907만L 저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가 결정됨에 따라 서울월드컵경기장 500m 이내의 위험 시설로 분류돼 지난 2000년 12월 마포석유비축기지는 폐쇄됐습니다. 폐쇄된 후에도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1급 보안시설'이었지만 40년 만에 베일을 벗었는데요. 지난 2017년 원래 시설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도심 속 생태 문화 공간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석유를 저장하던 탱크 시설이 예술 공간으로 변했고 카페, 회의실, 생태 도서관 등을 갖춘 커뮤니티센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심 속 생태 문화 공원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죠.
문화비축기지는 T0부터 T6까지 7개 공간으로 나뉩니다. 가압펌프장과 소화액 저장실이었던 T0(문화마당)는 스티븐 퓨지의 벽화가 그려진 ‘아트 스페이스 용궁’으로 변신했습니다.
T5(이야기관)는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 T4(복합문화공간)는 탱크 내부를 그대로 살려 공연장과 전시실로 꾸민 공간입니다. 원형 탱크의 무게를 분산하는 철제 기둥과 천장에서 우산살처럼 뻗어나간 소화액 관이 인상적입니다. 천장의 유량 계측 구멍으로 스며드는 빛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T3(탱크원형)는 탱크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녹슨 철판의 탱크와 지붕으로 오르는 철제 계단, 탱크를 둘러싼 콘크리트 방유제까지 원래 모습 그대로입니다. T1은 탱크를 해체하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바꾼 공간으로, 매봉산 암반이 한눈에 들어오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내부 분위기가 바뀝니다. T2는 야외무대와 공연장으로 쓰입니다.
T6(커뮤니티센터)는 문화비축기지 중심에 있고, 규모도 가장 큽니다. T1과 T2를 해체할 때 나온 철판으로 내·외부를 꾸몄습니다. 2층에는 동그란 하늘을 만나는 ‘옥상마루’와 생태 도서관 ‘에코라운지’, 1층에는 카페 ‘Tank6’가 들어섰습니다.
폐정수장이 인생 공원으로, 영등포 선유도 공원
한강의 선유도는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신선이 놀던 산’, 선유봉(仙遊峰)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암석을 채취하며 훼손되기 시작해, 1965년 양화대교가 관통하고 1978년 정수장을 세우면서 그 절경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은 선유도는 2002년 생태공원으로 부활했습니다.
폐정수장에서 친환경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한 선유도 공원은 역사적인 산업 유산을 재생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며,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침전지 구조가 온전히 남아있는 '시간의 정원'은 선유도공원의 포토 스팟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밤이 되면 아치형 선유교에 화려한 조명이 들어와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공원 정문에 들어서면 관리사무소 건물이 보이는데요. 수조에 모래와 자갈 등을 담아 불순물을 걸러내는 시설이었습니다. 내부에 섬의 역사를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습니다. 수질정화원에서는 계단식 수조를 거치면서 물이 정화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으며, 수생식물을 심은 온실에서도 정수 과정을 살필 수 있습니다. 옛 침전지의 스테인리스 수로를 그대로 활용했다고 하네요.
또한 송수 펌프실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선유도 이야기관’, 콘크리트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만 남긴 ‘녹색 기둥의 정원’이 이어집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콘크리트 기둥을 휘감은 담쟁이덩굴이 계절마다 독특한 매력을 풍깁니다. 취수 펌프장을 리모델링한 카페 ‘나루’에서는 평화로운 한강 전망이 펼쳐집니다.
한편, 선유도에는 장애인주차장만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선유도공원 정류장에 내리거나, 한강공원 양화선착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선유교를 건너 들어가야 합니다.
동굴 속 신비로운 호수, 충주 활옥동굴
충주호 변에 있는 활옥동굴은 최근 SNS에서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활옥동굴은 1900년 발견돼 일제 강점기 시기인 1922년에 개발을 시작한 국내 유일의 백옥·활석·백운석 광산입니다.
길이가 무려 57km, 지하 수직고는 711m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동굴인데요. 활옥동굴은 한때 8000여 명이 일할 정도로 잘나가는 광산이었지만, 값싼 중국산 활석이 수입되면서 낮은 채산성으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폐광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2019년 도 2.5km 구간에 각종 빛 조형물과 교육장, 공연장, 건강테라피존 등을 꾸며 동굴 테마파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동굴보다 규모가 큰 활옥동굴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습니다. 활옥동굴은 평균기온 11~15℃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해 사계절 내내 인기입니다. 동굴 곳곳에 네온을 이용한 조형물이 있어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동굴의 하이라이트는 암반수가 고여 생긴 호수입니다. 동굴 안에 호수가 있다는 것만으로 신비로운데, 맑은 물에 사는 은어와 황금송어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2~3인용 투명 카약을 타고 여유롭게 동굴을 유람하는 체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고추냉이를 시험 재배하고 있는 동굴농원, 와인저장고, 동굴오락실 등을 갖춰 가족 여행지로 손색이 없습니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 마감은 오후 5시인데요.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이라고 합니다. 입장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주도 가면 꼭 들러야 할, 서귀포 빛의 벙커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빛의벙커는1990년 KT가 국가 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센터입니다. 센터는 철저한 보안 속에 관리되다가 2000년대 초부터 용도 없이 방치됐지만 2012년 민간에 불하하며 공개되었습니다.
이후 2018년 11월에 빛의 벙커가 문을 열며 제주 최초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90대의 빔 프로젝터에서 투사하는 명화 영상이 벽부터 바닥, 기둥 등에 흐르는 장면을 연출하죠. 벙커다 보니 외부의 빛과 소리로부터 완전히 차단돼 미디어아트를 더욱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고, 자연 공기 순환 방식을 활용해 섭씨 16도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연중 내내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전시장은 하나의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거울로 이뤄진 작은 미러룸, 전시 중인 작품을 한 장씩 보여주는 ‘ㄷ 자형’ 갤러리룸 등과 여러 개 벽이 공간을 구획해 단조롭지 않습니다. 입구나 열린 창이 프레임 역할을 해 보는 방향에 따라 흥미로운 시선도 연출합니다. 또 전시와 전시 사이, 미디어 아트 작품이 사라지는 막간에 콘크리트 공간이 날것 그대로 보여 잠시나마 옛 센터의 풍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매해 주제를 달리하여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의 대표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꼽히고 있습니다. 개관 기념 전시로 연 '구스타프 클림트_색채의 향연'과 2019년 '빈센트 반 고흐_별이 빛나는 밤'이 큰 인기를 끌며,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6월엔 '세잔_프로방스의 빛' 전시와 '칸딘스키_추상 회화의 오디세이' 전시가 진행 중인데요. 빛의 벙커 예약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입장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폐광에서 인기 촬영지로, 정선 삼탄아트마인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시절, 이곳은 기계 소리 가득한 산업 현장이었습니다. 1964년 문을 연 뒤 수십 년 동안 광부들의 피땀으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생산량이 감소해 결국 지난 2001년 38년 만에 문을 닫았고, 2013년 150여 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 10만여 점을 갖춘 복합 문화 예술 단지 ‘삼탄아트마인(samtan art mine)’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탄가루가 범벅이 된 얼굴에 눈동자만 빛나는 광부의 대형 초상화가 관람객을 맞습니다.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면 삼탄역사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이 나옵니다. 작은 공간에 가득한 서류 더미가 눈길을 끄는데요. 수십 년간 모은 직원들의 급여 명세서와 건강관리표 등이 지나간 시대를 증언합니다.
마인갤러리는 전시 공간입니다. 3,000여 명이 3교대로 이용하던 샤워실, 작업용 장화를 씻던 세화장에 당시 분위기를 살린 독특한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레일바이뮤지엄은 지하에서 캐낸 석탄이 모이던 곳으로, 높이 53m의 권양기(광부와 석탄을 운반하는 산업용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설비가 거대한 뼈대를 드러냅니다.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촬영집니다.
건물 밖은 ‘기억의 정원’입니다. 연탄으로 쌓아 올린 탑, 광부의 실루엣을 담은 철근 작품, 석탄을 실어 나르던 탄차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갱도에 공기를 공급하던 중앙압축기실에는 원시미술관이 들어섰습니다. 동굴벽화와 조각 등 세계 각국의 원시미술 작품이 땅속에 공기를 공급하듯 관람객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은 하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까지이며 극 성수기엔 휴관일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합니다. 동절기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하며, 관람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혐오 시설의 화려한 변신, 울산 세대공감창의놀이터
세대공감창의놀이터는 주민 혐오 시설이던 음식물 처리장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새롭게 태어났는데요. 울산 북구가 주민 의견을 수렴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세대공감창의놀이터는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인 친환경 놀이 공간,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가족 중심 공동체와 문화 예술 활동 체험 공간을 지향합니다.
세대공감창의놀이터의 대표 시설인 그물놀이터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며 재미를 느끼고, 몸의 감각과 상상력을 키우도록 이끌어줍니다. 나무놀이터는 은은한 나무 향이 풍기는 친환경 놀이 공간입니다.
그물놀이터 이용 연령은 7~13세이며, 나무놀이터는 6세 이하 아동이 이용하는 시설인데요. 그물놀이터와 나무놀이터는 하루 4회씩 운영하며,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학생들이 집을 설계하고 짓는 ‘청소년 건축학교’, 예술과 모험이 놀이와 만나는 ‘노리별 829’, 방학 때 열리는 ‘방학놀이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최근에 문을 연 곳부터 오래전 선보여 자연과 도시의 어울림을 인정받는 곳까지 다양한 도시재생 여행지를 소개드렸는데요. 옛 공간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여행지에서 여러분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을 떠올려 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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